불정심관세음보살 모다라니 수행
저는 남들보다 늦게 출가를 했어요. 집안이 넉넉해서 화학공장을 경영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해 보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도 술 · 담배도 하지 않았고 세속적인 즐거움에는 초연한 편이었어요. 평소 몸이 약해 결혼도 하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공장에서 염소가 터지는 바람에 폐가 나빠졌어요.
당시 폐병에는 약이 없어서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었죠. 요양이나 할 생각으로 금산 태고사를 찾았어요. 그때가 28세. 태고사에는 나의 첫 번째 은사가 되신 포산(飽山)스님이 계셨어요. 포산 스님을 뵙고 토론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10권을 숙독하는 등 철학과 문학에 나름의 소양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던 터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처음 불교를 접하다보니 호기심도 들고 지적인 욕구도 강하던 터라 토론은 2주일 정도 계속되었어요. 결과는 내가 읽고 들은 철학 · 문학이 불교에는 필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예요. 철학 · 문학 등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 위대하다는 서양의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도 윤리도덕 정도의 가르침이었어요.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내 병이 업력으로 인해 생겼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 역시 공업(共業)임을 알게 되었어요. 스님은 업장을 소멸하고 건강을 찾고 싶거든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 를 열심히 외우라고 하시더군요.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 아리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다냐댜 아바다 아바다 바리바제 인혜혜
다냐다 살바다라니 만다라야 인혜혜
바리마수다 못다야 옴 살바작수가야 다라니 인지리야
다냐다 바로기제 새바라야 살바돗따 오하야미 사바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잠도 안 자고 앉아서 부지런히 외웠어요. 아침 · 저녁엔 옆방 스님들과 참선도 같이하면서 약 5주 동안 일심으로 모다라니를 외웠습니다. 하루는 다라니를 외우고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유명한 일본인 내과과장인 나리타가 나타났어요. 내 몸 이곳저곳을 검진하고 나서 ‘다 나았다. 아주 기쁘다’ 고 말하더군요.
이 때 앉은 채로 꿈이 깨었는데, 날아갈 듯이 몸이 가뿐했어요. 문득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에 40리나 떨어진 연산 시장으로 뛰어 내려갔어요. 그전에는 입맛이 없어서 공양도 겨우 했는데, 시장에서 국수 떡 등을 배불리 먹었어요. 그러고 나니 기운이 솟는 게 몸이 나은 것을 느꼈지요. 불법의 위력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어요.
부처님의 가피를 체험한 후 포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포산스님은 앉아서 10리 밖의 일을 보고 듣고 하실 정도로 도가 높았어요. 포산 스님은 ‘옴마니반메훔’ 6자대명왕진언을 외우셨는데, 모다라니를 계속 외웠어요. 스님에게서 주력수행법과 함께 생식, 벽곡 등을 하는 신선도를 배우기도 했어요.
그 스님에게서 ‘탁발(托鉢)은 저렇게 하는구나.’를 배웠지요. 6.25전쟁 때는 거지 생활을 곧잘 했습니다. 여름에는 남산에, 겨울에는 한강변에 움집을 지어놓고 거지 생활을 했어요. 솥단지를 걸어놓고 깡통에 담아온 음식을 모두 넣고 끓여요. 그러면 병도 안 생기고 참 맛있어요. 나는 부잣집에 태어나 잘 먹고 호강하며 지냈지만 깡통에 든 밥을 먹으면서도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일체유심조’ 라는 진리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가난한 사람일수록 없는 살림에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부자는 인색한 것으로 부자가 되는가 보다 했지요. 탁발은 수행을 방해하는 가장 큰 독소인 아만과 아집을 없애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주는 공덕이 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혜암스님 역시 나를 참선으로 이끌기 위해 애를 쓰셨어요. 하루는 스님께서 <반야심경>에 대해 물으며 ‘부처 불(佛)자 보다 더한 곳이 있으니 일러라’ 하셨는데, 나는 답을 못했어요. 그로부터 ‘내가 안다는 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주력수행만 해서는 안되겠구나.’느꼈지요.
그때부터 참선수행에 본격적으로 몰두했는데 <반야심경>의 이치를 깨칠 수 있었어요. ‘마음이 곧 부처(心則是佛)’ 임을 확신하게 된 것이에요. 혜암 스님은 <반야심경>에 대한 나의 답변이 옳음을 인가하고 ‘효일(曉日)’이란 호와 전법게를 내리셨어요.
은산철벽이 터지면 화두가 술술 풀려요. 경전과 선어록을 봐도 모르던 부분이 저절로 환하게 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별 것 아닌 것이 수행자들을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오도의 세계’ 첫 관문을 통과한 뒤에는 ‘놓고 쉬는’ 공부를 해야 해요. ‘내가 깨쳤네, 내가 큰 스님입네’ 하는 상을 일체 버려야 해요.
참선이란 것은 본디 내 마음자리를 바로 보는 거예요. 거울의 때를 벗기면 자기 얼굴이 환하게 보이듯이 본래 나만 남는 거예요. 그 경계에 들어서면 춤도 춘다고 하지만, 그때부터가 중요해요. ‘안다고 하는 그 생각’ 마저 버려야 해요. 백양사의 서옹 스님처럼 무심도인(無心道人)이 되어야 해요.
참 도인은 어린애처럼 즐거울 뿐 아무런 상이 없는 거예요. 보림(保任·保護任持의 준말로 깨달은 이가 그 경지를 잘 보호해 지켜가지는 것)이란 게 딴 게 아니에요. 수 억겁 동안 쌓인 습을 지워내는 작업이에요. 미세한 식·색·명·리(食色名利)·잠 등 오욕락을 제거하는 것이지요. 죽을 때까지 쉬지 않아야 해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배부르게 먹으면 성욕이 발동하고, 권력을 잡으면 재물을 모으려 해요. 그래서 밥을 적게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요.
50여년의 수행으로 얻은 결론은 ‘절대성이 없다.’ 는 것입니다. 유마거사의 불이법문(不二法門)과도 같은 것이죠. 선악과 생사 등 모든 가치는 둘이 아니요, 그 어떠한 것도 절대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상대성원리를 발표했지만 불법은 정신과 물질, 모든 것이 절대성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이 보는 선악 등 온갖 분별이 절대성을 갖지 못해요.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에 처했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예요. 그렇게 될 만한 이유가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란 말이지요. 누구의 잘 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어요. 오욕락이 쌓이고 탐진치가 모여 벌어진 일이니까요. 업력으로 주고 받는 것이기에 연기론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착하게 인욕과 보시를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 범행스님은 1921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나 1949년 팔달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54년 봉은사 초대 주지를 맡아 정화운동에 앞장섰으며 동화사, 불국사, 조계사 주지를 역임했다. 특히 68∼73년 불국사 주지로 재임할 당시 발굴 조사와 함께 불국사의 옛 모습을 복원하여 복원불사의 선구자로 추앙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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